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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04

이여운

2020. 존재 이유/ Critic.박명지

<위엄의 형태 10>와 <금산사 미륵전>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아마 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딘가 존재하는 건물을 옮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실제의 건물과 연결점이 끊어지고, 재현의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독단적인 이미지이다. 그렇다면 설계도와 유사해 보이지만 회화의 성격을 지닌 이 작품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 걸까?

 

이여운 작가는 작품에 표현된 대상에 관한 서사를 나타내기보다, 그 자체의 형태에 집중하 고자 종교 건축물을 그 대상으로 잡았다. 종교 건축물은 오랜 시간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해진 방식을 가지게 된다. 고딕 양식을 따른 건물이 대부분 높고 뾰족한 첨탑을 가지고 있으며 수직적이고 직선적인 느낌을 제공하는 것과 우리나라의 절이 '칠당가람'이라는 구성으로 이루어진 것을 통해 특정한 형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양식을 갖춘 건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경외심을 제공하고 우러러보게 한다. 그런데 사실 이 특징이 의도치 않게 우리의 시각을 편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즉 이러한 특징이 외형 그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게 하느냐는 의문이 작가에게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건축물 주위의 배경과 나머지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건축의 형태만을 표현하고자 했다. 주변과의 관계 및 시야의 한계로 한 눈에 바라볼 수 없었던 건물 정면의 모습을 그 자체로 담고자 한 것이다. 또한, 기존의 양식 조건을 모두 조합해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작가만의 건물을 먹을 통해 캔버스에 쌓아 올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온전히 작가가 표현한 대상에 집중한 채, 그 존재 자체의 '미'를 감상하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한 그림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정확한 선을 통해 형태가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면 수없이 많은 선의 중첩을 통해 형태가 구현된 것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캔버스 위에 세필로 수직, 수평의 선을 계속 쌓음으로써 건물이 포함한 시간의 흔적이 남아있도록 구성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수묵화에서 정신성을 보여주는 매체로서의 '먹'의 특징을 살리게 된다. 이러한 제작 방법은 기존의 건물 자체의 정확성, 확실성을 살린 건물 그림과는 다른 성격을 지니게 한다.

 

이렇듯 제작 의도를 이루기 위해 편집, 변형의 과정을 거쳐 화폭에 옮겨진 건물은 원본과 거리가 멀어진 시뮬라크르 이미지로 존재하게 된다. 즉 기존의 종교 건물이 가지고 있던 의미와 다른 '형태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목적'이라는 새로운 존재 의미를 부여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단순히 재현한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사실 작가의 길고 깊은 고민 끝에 나온 이미지라는 점을 자각하게 한다. 기술과 매체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이미지들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제작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시뮬라크르 이미지 또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이 이미지가 '왜' 생겨났는지 의문을 가지기보다는 자연스레 흡수하고 있다. 하지만 <위엄의 형태 10>와 <금산사 미륵전> 작품 감상을 통해 시뮬라크르 이미지의 탄생 이유를 되짚어보고, 이 이미지들의 이면도 고려하는 비평적 사고를 추구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