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04
이여운
2015. 다양한 건축물 통해 인간의 내면세계 치열하게 탐구/ 전혜정(미술 비평가)
[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45)] 껍데기, 그 위대함/이여운 작가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환상에 의문 제시
껍데기로 표현된 건축물은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도구
우리는 겉모습을 보고 판단한다. 사람뿐 아니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인터넷과 여러 매체들에서 접하는 것들, 사물들까지 우리는 우리 시각에 다가서는 그 첫 인상과 모습들로 이 모든 것들을 느끼고 판단한다. 물론 우리는 겉모습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고, 그 기저에는 겉에서 보이지 않는 속뜻과 내부의 층층이 다른 다면성을 지니고 있을 수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어쩌면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법이기에, 또한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심정으로 겉모습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 그리고 겉모습 뒤에 숨겨진 빙하 하단과 우물 깊은 속 같은 거대한 또 다른 모습을 쉽게 간과하고 만다.
이여운의 작품은 도시의 겉모습들을 보여준다. 작가는 우리가 매일 걷는 보는 거리, 익숙하게 살고 있는 집, 때로는 특색있고 개성있는 도시와 유명한 관광지의 멋진 건축물들을 그린다. 아파트촌에서 자라 산의 풍경보다 일상적 도시 풍경이 더 익숙했다는 작가는 아름다운 산수의 자연이 아닌 동네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여운의 초기 작품들에서는 매일의 삶이 지속되는 도시 풍경 안에서의 쓸쓸한 현대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주로 ‘그림자’로 등장하는 이 현대인들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자, 작가의 고독과 외로움이 투영된 그림자이기도 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이여운의 도시와 그 속의 건물들에서 온기가 느껴지지는 않지만 콘크리트와 금속의 차갑고 비인간적 대상들로도 여겨지지 않는 것은 도시와 건물들이 단순히 장소라는 대상적 개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지나 천에 주로 먹으로 그린 이여운의 거리와 건물들은 재료와 기법이 전해주는 편안함과 일상적 주제의 익숙함 그 이상을 전달하고 있다. 거리와 건축물은 단순히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며, 건축가와 설계사, 건설사 등 그 건물을 만든 이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이여운의 건물들은 오히려 내 삶의 배경으로, 풍경으로, 일부로 여겨지는 그 도시 건축물들을 보는 작가 자신의 시선과 그곳에 살고, 그곳을 방문하며, 때로는 무심코 지나치기도 하는 사람들의 흔적, 즉 그림자를 반영하는 것이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건축함, 거주함, 사유함’(1951)이라는 글에서 “건축함이란 근원적으로는 거주함을 의미”하고, “거주함의 근본 특성은 보살핌”이라고 했다. 하이데거는 건축이란 이 땅 위에서, 즉 하늘 아래 있는 것인데, 이 양자는 “신적인 것들 앞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하며, 결국 땅과 하늘, 신적인 것들과 죽을 운명의 사람이 사방에서 하나로 귀속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여운의 건축은 땅과 하늘, 신적인 것과 사람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을 듯 보이나 바로 그 건축물을 보고 있는 작가 자신의 외로운 시선을 투영한다. 건축물은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아 여러 사람들이 살았던 직접적인 흔적을 보여주어서 좋아한다는 작가에게 그림으로 다시 태어난 건축물은 하이데거 식의 “사방을 소중히 보살피고” “땅과 하늘 그리고 신적인 것들과 죽을 운명의 인간들을 결집하여 모아들이는” 어쩌면 플라톤(Plato)식 건축물의 완벽한 이데아(Idea)의 불완전한 그림자, 동굴과도 같은 이 세상에 비치는 우리 현실의, 그리고 작가 자신의 고독한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이여운의 작품은 거리와 외로운 사람, 그림자에서 점차 건물들도 그 시선이 집중된다. 도시 골목의 건물과 간판들은 서로 중첩되어 겹쳐있고, 한옥마을의 한옥은 물그림자와 같은 모습으로 흔들리고, 홍콩의 낡은 건물들에 보이는 빽빽한 창문들은 낯선 도시의 개성과 익숙한 삶의 현장을 동시에 전달한다. 안개, 비, 그림자와 같은 것들로 그 모습을 때로는 분명히 드러내지 않던 도시와 그 안의 건축물들은 그럼에도 또 다른 자아가 투영된 왜곡된 거울처럼 겉모습만인데도 속내를 드러내는 듯 보인다.
‘위대한 껍데기’라는 주제의 작가의 최근작들에서 우리는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고딕풍의 건물들을 ‘껍데기’라는 말로 지칭함으로써, 건물의 무게감과 진지함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면서도 그 껍데기만으로도 너무도 매력적인 건축물들에 다시 환상과 위엄을 부여하는 작가의 섬세한 붓끝을 본다. “‘형식이 내용을 만든다’는 말처럼 철저하게 형식에만 몰입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술이 가지고 있는 진실성의 범위를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규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도 모호한 시대에 내용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는 것 자체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작가는 서구의 대표적인 예배장소이자 관광지인 고딕건축양식들의 성당들과 건물들을 나열해 현대인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환상과 형식에 의문을 제시한다. 실제 건물들을 그대로 모사한 듯한 작가의 건축물들은 그러나 실제 여러 건축물들의 모습이 한 건물에서 합쳐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실처럼 그려지기도 하고, 실제 건축물들을 그리기도 하는 등 실재와 환영을 엄밀하게 구별하기 어렵다. 아니, 오히려 실재하지 않는 건축물들이 더 실재처럼 보여지는 보드리야르식(Jean Baudrillard) ‘초실재(hyperreality)’를 드러낸다.
거주자가 없고, 방문자가 보이지 않으며, 배경이 없는 이 건물들은 그 무게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떠 있는 듯하다. 실제 방문했을 때 볼 수 있는 각도도 아니고,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본 각도도 아닌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는 고딕 건축물들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인간의 시선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신의 시선도 아닌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환영적 시선으로, 겉에 드러난 모든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계적 카메라의 시선으로, 환부를 찾으려는 듯한 외과의사의 시선으로 압도적 규모와 놀라운 화려함, 세밀한 세부 모사를 드러낸다. 작가가 한 화면에 구축하는 ‘실재’와 ‘환영’의 조합, 다양한 시선들의 조합, 캔버스 천에 겹쳐진 수묵의 조합은 기이한 조화를 이루어 ‘위대한 것’의 ‘껍데기화’를 꼬집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식뿐인 ‘껍데기’가 ‘위대해’ 보이는 결과를 낳는다. 작가가 그려내는 껍데기는 알맹이를 보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에 제거되거나 비판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현실의 허구와 환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림자, 반영, 껍데기는 그리하여 그 자체로 생생한 아우라(aura)를 뿜어낸다. 작가의 손에서 태어난 껍데기는, 그 껍데기로 표현된 건축물들은 몸이라는 껍데기를 입고 있는 우리 자신이다. 그리고 이 껍데기가 우리의 알맹이와 본질을 우리 자신이게끔 한다. 껍데기는 사실이 아닌 것이 아니라 사실의 그림자이고 또 다른 사실이며, 어쩌면 더 진실된 사실일 수 있다. 허구와 진실의 혼동 속에 우리의 그림자가 우리와 함께 서있다. 여전히 껍데기를 걸친 채.
작가 이여운은 누구?
이여운은 홍익대학교 동양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입선(1998, 2000), MBC미술대전 입선(1999), 중앙미술대전(2000), 동아미술대전 입선(2000, 2004), 송은미술대상(2005, 2006, 2007) 등을 받았다. 대만과 중국의 베이징, 호주의 시드니 등에서의 국제전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포스코미술관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약 15회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도시의 건축성과 이미지의 허구성 및 환상, 실재와 비실재 등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천에 모노톤 수묵을 겹쳐가며 지속적인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필자 전혜정은 누구?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